랜덤라이프2011/06/05 16:25

Afrique, mon Afrique 프로젝트

:에코팜므 with 오르그닷




  • 아프리카 난민 작가들과 함께 만드는 윤리적 패션


  •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고향, 아프리카를 생각하며 그린 작품이 담긴 Afrique, mon Afrique 티셔츠 수익금은 이주 여성을 위한 “작가양성 프로젝트”로 돌아가 더 나은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 조성


  • 난민여성과 이주여성을 지원하는 에코팜므와 윤리적 패션을 지향하는 오르그닷, 두 사회적 기업의 새로운 상생 콜라보레이션



     

    아프리카 여성 난민을 지원하는 에코팜므와 윤리적 패션을 지향하는 오르그닷이 만나 Afrique, mon Afrique 티셔츠를 출시합니다. 

    Afrique, mon Afrique의 그래픽들은 에코팜므의 이주여성을 위한 “작가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된 작품들입니다. 어쩔 수 없이 떠나왔지만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고향,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여성 난민 작가들에게 끝없는 모티브를 제공합니다. 비록 몸은 한국에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한국 사회의 편견에 맞서 싸우면서도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잡고자 노력하는 그녀들을 지지합니다. 

    Afrique, mon Afrique 티셔츠의 수익금은 이주여성을 위한 “작가양성 프로그램”과 “자문화 교육”에 지원되며, 그녀들이 더 나은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사용됩니다.

    난민여성과 이주여성을 지원하는 에코팜므와 윤리적 패션을 지향하는 오르그닷, 두 사회적기업의 크리에이티브하고 새로운 상생 컬래버레이션! 


    Afrique, mon Afrique 프로젝트가 궁금하신 분들은 6월 7일부터 에코팜므와 오르그닷 블로그에 들러주세요. 하나씩 그 비밀이 벗겨집니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upani
역사하기2011/04/16 23:05


지금과 같은 한겨울에는 검은색, 회색 등의 무채색 옷들이 대세를 이루고,
따뜻한 봄날이 오면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옷들이 거리를 채울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중반에 영국의 화학자 퍼킨에 의해 합성염료가 발명되기 전까지
이렇게 다채로운 색상의 옷을 입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가 괜히 백의민족이었겠는가? 오르그닷의 인기 상품 중에 하나인
친환경 무가공 원단이 옅은 아이보리 빛을 띠고 있는 것처럼...
인위적으로 염색을 시키지 않은 면, 마 등의 천연 원단을
값비싼 염색의 과정으로 거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화학자 퍼킨(Sir William Henry Perkin, 1838~1907)에 의하여
합성염료 모브가 발명되기 전까지 예쁘게 옷감을 염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즉 노동)을 필요로 했다.


유럽인들은 대항해 시대 광산 채굴, 플렌테이션 농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염색 산업을 위해 아프리카 흑인 노예 노동을 사용하였다.
즉 화려한 색상의 옷이 대중화하기 위해 노예노동이 뒷받침되고 있었다는 아이러니가 여기서도 발견된다.



악마의 푸른 염료 인디고


인디고는 인도에서는 4000년 전부터 사용된 기록이 있으며,이집트에서는 미라를 염색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한편 청출어람 청어람에서 등장하는 쪽을 생각하면 그 오랜 역사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인디고는 그 색소를 지니고 있는 식물로도 쓰이고, 푸른 색소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인디고는 매우 귀한 염료였는데, 스페인 식민지배자들이 아메리카에 진출했을 때
자생하는 인디고를 발견하고, 16세기에는 아시아산 인디고를 이식하는데 성공하였다.



짐작할 수 있듯이 아시아산 인디고를 흑인 노예노동을 통해 염료화하여
유럽에 판매하는 글로벌 무역이 발달하게 된다.


1878년 독일 화확자인 Adolf von Baeyer에 의해 합성 인디고 염료가 개발되기 전까지
아이티는 주요 인디고 생산지였다.


최근 지진으로 고통받고 있는 카리브해의 섬나라에 왜 그렇게 많은 아프리카 출신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또 빈국으로 전락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이제는 희귀종이 되어버린 브라질 나무



1500년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남아메리카의 해안에 도착했을 때
귀한 적색염료의 원료인 브라질나무(빠우 브라질)가 엄청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큰 면적을 지니고 전세계 동식물의 30%를 품고 있는
이 땅의 이름이 브라질이 되는 순간이다.


고급 벨벳 소재를 붉게 물들이는데 사용되오던
브라질 나무는 마구 벌채되어 유럽으로 이송되었고,
18세기에 이르러 브라질에서도 보기 어려운 수종이 되고 말았다.


적색염료인 브라질나무는 대패질로 가루를 만들어 염료화했는데

이 나무가 너무 단단해서 고된 노예노동이 필요했다.
고된 땀방울에 엉겨붙은 가루가 붉은 빛을 낼 때
피땀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요즘 화학염료의 독성이 문제가 되면서 천연염색 의류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염료가 원단에 안착되기 어려운 점, 동일한 색상 품질을 유지하기 어려운 점 등이
대중화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물론 비싼 가격도 한 몫하고 있다.



다음 연재에는 선덕여왕에 등장한 강황, 꼭두서니, 코치닐 등
보다 다양한 천연염료의 역사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아래 두 서적은 유럽의 아메리카 식민지배를 쉽고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주경철 교수의 [문명과 바다], 산처럼.
이성형 교수의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까치

Posted by upani
역사하기2011/04/16 23:04
 

카슈미르 지방의 산양(cashmere, 신사복에 쓰이는 캐시미어-cassimere말고)이나 에콰도르에서 노니는 저 귀여운 알파카 녀석의 털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어떤 경로로 극동의 땅에 있는 백화점에 걸려 있는지, 화학 염료도 없던 시절 벨라스케스의 궁정 그림에 등장한 인물들의 화려한 색상의 옷들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Photo by Tony Richards.)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윤리적 패션 기업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섬유 발전사, 복식사에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앞선 질문들처럼 소재 및 제품의 어원이나 용어에 깃든 세계사를 탐험해보고 싶은 욕구에 휩싸일 때가 많지만 그 뿌리 깊은 역사만큼이나 방대한 이야기들을 선뜻 들추어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미 잘 알려진 사실들로부터 얘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대항해 시대, 산업혁명, 공장제 기계공업, 동인도회사, 러다이트운동, 아편전쟁다들 잘 알고 있는 세계사 키워드인데, 이들의 핵심에 패션 산업이 있다.

 

대항해 시대와 패션의 글로벌 아웃소싱의 시작

 

일찍이 대항해 시대의 식민지배는 일종의 벤처비즈니스였다. 콜럼버스, 피사로, 코르테스를 이은 유럽의 식민지배자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넌 모험가들인데, 이들이야말로 지금도 착취 문제를 낳고 있는 글로벌 아웃소싱의 선구자들이다. 군사력이라는 자본을 들고 해외로 나가 금-은 약탈, 플랜테이션 농업이라는 ROI(투자수익률)가 높은 비즈니스를 수행했던 것이다.

 

이베리아 반도 나라들의 뒤를 이어 아시아로 떠난 네덜란드와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해상 무역의 형태로 이 모험에 뛰어들었다. 뒤늦게 출발한 영국은 아시아 내 교역에 뒤처져 있어 인도의 면직물을 유럽에 들여오는 모험을 감행했는데, 이 모험이 대박을 터뜨려 유럽인들의 면직물이 빠르게 린넨, 쐐기풀원단 등을 대체하게 된다.

 

인도 면직물의 유입은 영국 전통 섬유 산업에 위협적이었다. 따라서 인도 캘리코 원단의 수입 제한 등 자국 직물 산업 보호 조치가 이루어졌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고, 오히려 인도의 면화를 가져와 공장제 기계공업 방식으로 대량 생산하는 체제를 갖추게 되어 산업혁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은 인도와 같이 저렴한 인건비로 좋은 면직물을 생산하기 어려운 영국의 사정 때문에 기계를 사용한 대량 생산체제로 발전한 것인데, 그 결과 일자리를 빼앗기고 처우가 더욱 열악해진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수고 저항한 러다이트 운동 등이 발생하였다.

 

직물 교역로의 변천과 아편 전쟁

 

중국의 비단과 차는 예로부터 고가품으로 유럽에서 인기가 높았다. 8세기 고구려 유민 고선지가 이끌던 당나라 군대가 탈라스 전투(이 전투를 통해 중국의 3대 발명품이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진다.)에서 압바스 왕조에게 패하면서 실크로드가 차단되었다. 이후 서남아시아의 홍해를 지나는 바닷길이 주요 교역로였는데 이를 통한 교역마저도 오스만투르크가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여의치 않게 되었다. 그래서 바스코다가마가 시도한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지나는 코스가 아시아 무역의 주요 경로로 떠올랐다.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바로 둥근 지구를 돌아 인도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이쯤 되면 유럽인들의 동방 교역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영국은 중국의 비단, , 도자기와 교환할 만한 경쟁력을 가진 제품이 없었다. 따라서 다량의 은이 필요했는데, 이 자금을 인도의 면직물과 아편으로 충당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중국 역시 세계적인 면직물 생산국이었고, 더 저렴한 가격에 뛰어난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 영국은 아편 수출에 더 열을 올리게 된다. 당시 청나라는 은으로 조세를 납부하게 하는 지정은제를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았다.(심지어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멕시코나 볼리비아의 포토시에서 생산되던 은이 유럽을 거쳐 중국으로 혹은 직접 태평양을 거쳐 중국으로 흘러 들었다.) 영국인들이 인도에서 가져온 아편으로 은을 유출해가니 첨예한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며

 

이처럼 면직물은 세계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를 이끌 만큼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면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 유럽에서는 쐐기풀과 린넨을 주로 사용하였다. 안데르센의 백조왕자에는 저주에 걸린 11명의 왕자에게 막내 엘리제가 쐐기풀로 옷을 해 입히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왜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면직물이 유럽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았을까?

이는 기후 때문인데 면화는 재배에 많은 물이 필요하며, 배수가 원만하고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어야 하는 특성이 있다. 해양성 기후인 서유럽에서는 재배가 어렵다. 지금도 오가닉코튼의 친환경성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물사용 때문인데, 우즈베키스탄의 면화재배로 아랄해 수량이 10%가량으로 줄었다는 사실이 이를 극적인 사례이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뿌리가 깊은 패션산업은 역사만큼이나 그 규모가 엄청나다. 2010년 전세계 패션 시장의 규모는 906, 우리나라는 26(비의류 포함 31)로 추정된다.
(
출처: Global Fashion Market Forecast 2016, Intrend)

한편 패션산업은 글로벌 아웃소싱이 가장 활발한 산업이기도 하다. 다른 장치산업들에 비해 시설투자 규모가 적고, 투자자금의 회수기간이 매우 짧다는 장점이 있어서 산업기반이 취약한 제3세계에서도 비교적 진입하기가 쉽다.

 

패션(섬유) 산업에 관한 얘기들을 들추어보면 세계사적인 사건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있다.

이후 연재에서는 염료에 관한 얘기, 공정무역에 관한 얘기, 봉제 아웃소싱에 관한 얘기들을 차근히 꺼내보고자 한다.

Posted by upani